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제아 토마스(1961) (문단 편집) == 여담 == * 선수시절에 승부근성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다. 동시대에 활약한 선수가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등등이었지만 전혀 밀리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마이클 조던을 세번이나 좌절시킨 배드 보이즈의 리더라는 버프도 있어서 올드팬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았다. * [[매직 존슨]]과 매우 각별한 사이다. 존슨이 초창기 버드가 이끄는 셀틱스에게 우승을 헌납하면서 크게 좌절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많이 위로해주곤 했다. 존슨이 에이즈 감염으로 은퇴한 후, 1992년 올스타전에서 팬들의 성원으로 올스타에 뽑혀서 경기에 나서게 되었을때, 몇몇 선수들은 그의 출전을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마스는 마이클 조던과 함께 에이즈에 대한 여러가지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는 등 많이 노력했고, 실제로 코트위에서 매직과 포옹도 하는 등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주었다. 매직이 이 올스타전에서 터트린 마지막 3점슛을 던질때, 그를 막고 있던 선수는 바로 토마스였다. 한 번 매직 존슨이 토마스의 뒷통수를 후리는 인터뷰를 해서 (요약하자면 토마스 성격이 드러워서 올림픽에서 아무도 토마스가 오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이가 틀어지긴 했었지만 요새는 좀 나아진 편. 가장 최근에 진행한 쇼에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화해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는 가슴 뭉클한 장면을 볼 수 있다. * 2016년 ESPN에서 실시한 포인트 가드 순위에서 토마스가 올라왔는데, 토마스가 스탁턴과 커리 보다 낮게 측정되었다 (스탁턴 3위 커리 4위 토마스 5위). 이에 매직은 트위터로 "스탁턴과 커리가 아이제아 보다 낫다고? 뭘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가 한마디만 하지. 내가 결승전에서 토마스랑 붙은 적이있는데 다치고 다리 저는 토마스였어. 그런데 걔가 한 쿼터에 25점을 넣었지." 라고 말하며 토마스를 저 둘보다 치켜세우기도 했다.[* 물론 2016년이니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이 일이 몇년 뒤에 일어났다면 오히려 커리의 순위가 너무 낮아서 문제였으면 문제였지 아이제아보다 높은 순위라는 점에 대해선 반론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실제 토마스를 까는 사람들 조차 인성이나 그의 경영 / 감독으로서의 실패에 대해서 까지 실력으로는 까지는 않는다. 다만 포인트 가드 순위에서 아이제아가 밀린 이유는 바로 기록. 여러 지표에서 그가 팀 오펜스에 차지한 비중이 아주 크진 않았다는 점이고 효율성 역시 높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1차 기록을 비롯해 2차 기록도 별로 높지 않다는 점도 포함이다. 그가 뛰어난 포인트 가드인건 사실이지만 팀의 에이스로서 공격에서 캐리를 다 했다는 건 의문이라는 것. 디트로이트의 우승이 아이제아의 에이스 기질보다 팀플레이나 디펜스의 힘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단 그 당시 같이 뛰었던 선수들이나 팀 메이트들은 대체적으로 아이제아의 리더쉽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 팀원들도 배드 보이즈는 아이제아의 팀이라는 걸 증언했고, 외부에서도 모든 걸 지휘하는 사람은 아이제아로 봤다. 이런 분위기를 볼 때 아이제아의 에이스 기질이 낮다는 건 맞지 않는 소리다. 무엇보다 아이제아는 클러치 상황에서도 꽤나 강한 선수였다.][* 당장 배드 보이즈의 구성원들만 보더라도 하나같이 컨트롤하기 힘든 악동들이다. 그런 악동들을 다 조율하고 적어도 배드 보이즈 시절 한정으로는 팀내에서 누구도 아이제아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에이스 기질이 없다는 건 어불 성설이다. 팀 플레이, 디펜스에서도 아이제아가 지휘하는 부분은 상당했다.] 비교적 낮은 USG%에도 불구하고 TS%가 높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이 점은 아이제아가 공격에서 아주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이 낮았다는 걸 의미한다.] 선수의 평가라는 게 한 순간의 임팩트만으로 평가를 하는게 아닌 커리어 전체를 놓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밀린점도 없지않아 있다. 반대로 스탯은 낮아도 순위가 높은 [[제이슨 키드]]가 있긴 하지만 아이제아의 순위가 키드보다 높게 측정되고 있으며, 키드도 그 스탯 때문에 컨퍼런스 파이널 한 번 못가서 조롱을 받는 [[크리스 폴]]과 비슷한 레벨로 취급을 받는다. 즉 같이 농구를 했던 내부자들 입장에서는 높게 취급을 받지만 동시대를 보지 못하고 숫자와 통계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평가가 상대적으로 박한 선수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피스톤즈의 운영방식이 지금의 스퍼스의 운영방식과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지금 포포비치의 방식처럼 배드 보이즈의 데일리는 선수층을 폭넓게 사용했고, 주전 선수였던 토마스, 듀마스 등도 에이스치고는 아주 많은 출장 시간을 받지는 않았다. 또한 팀의 공격성향도 공격위주보다는 수비위주에 가까웠다. 그러니 개인 스탯 축적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토마스는 팀과 승리를 위해 개인기록이나 자신의 욕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선수였다.''' 그가 속한 팀의 동료들 모두가 그런 리더의 철학에 따라, 철저한 희생으로 자신의 욕심을 배제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통계에서 숫자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토마스는 피스톤즈의 스타일 때문에 개인기록 뿐 아니라 수상실적에서도 손해를 많이 본 편이다. 토마스는 올NBA팀 선정이 87년 이후 끊겼고, 우승 당시에 새로 신설된 써드팀 가드 자리엔 오히려 조 듀마스가 선정되었다. 스탯상 그의 전성기는 20득점 10어시스트 이상을 4년 연속으로 기록하던 84~87시즌까지였는데, 2연패 시절엔 18-9 정도의 스탯을 기록했다. 사정을 모르고 기록만 보면 "토마스가 약간 하락세여서 듀마스가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나보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도 우승 당시 독보적인 에이스는 토마스였다. 물론 득점력이 좋은 듀마스를 1옵션으로 민 것은 맞으나, 이때 피스톤즈는 개인기록을 신경쓰는 팀이 아니었다. 개인기량을 따지면 토마스는 저때 20-10을 넘기고 올NBA세컨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선수였다. 실제로 당시 조던, 매직, 버드 등과 라이벌 구도였던 것은 토마스였으며, 피스톤즈와 붙을 때 불스는 조던의 부담이 커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키 차이가 많이 나는 조던에게 (평소 매치업이 듀마스가 아닌) 토마스에 대한 맨투맨 수비를 시킨 적도 여러번이었다. 그만큼 위력적인 선수였고, 리그 내 최고 선수 중 하나였다. 앞으로 토마스에 대한 '국내평가'는 계속 낮아질 것 이다. 이미 30년전 선수이고 오직 스탯과 개인수상으로 평가하며 무엇보다 토마스의 플레이를 직접 체감하지 못했다. 또한 대부분 10~20대 연령층이 활발히 활동하고 현역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에 토마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각박해질 것 이다. 팀의 에이스로 우승 2회를 차지 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일이며 역사적으로도 이런 선수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잘 이해가 안된다면 아이제아가 상대고 이긴 선수들을 생각해보자. 무려 버드, 매직 그리고 조던이다. 이 셋은 다 알다시피 NBA 역사상 Top 10안에 든다는 선수들이다.] 10년차 이상의 동포지션에서 [[존 스탁턴]],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시]], [[게리 페이튼]], [[토니 파커]], [[크리스 폴]] 등 토마스와 같이 '''에이스'''로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 이 중 우승을 경험해본건 키드와 페이튼인데 키드는 11파이널에서 솔솔히 활약했으나 당연히 그 파이널의 주역은 노비츠키였고 페이튼의 경우는 06파이널에서 웨이드의 하드캐리로 사실상 링을 얻은것이다.] 파커의 경우 [[팀 던컨]]이라는 역대급 선수가 있었으며 실제로 던컨이 팀의 핵심이였다.[* 물론 2007년에는 본인 스스로가 FMVP를 따내며 그 존재감을 입증하기는 했다는 점이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때도 던컨 / 마누가 전성기이긴 했다. 유일한 슈퍼스타였던 토마스와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부분.] 게다가 '''정규시즌 에이스 + 파이널mvp까지 차지한 포가''' 로 기준을 더 강하게 두면 이는 정규시즌 백투백 mvp와 4번 우승을 차지한 2022시즌 이후의 스테픈 커리만 달성했을만큼 80년대 후반 토마스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체감할수 있을 정도다. 토마스는 선수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누적 기록 등에서 손해를 보았지만 선수경력 중 리그 MVP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성과를 보였기에 무의미한 말년시절을 보내기 않고 깔끔하게 은퇴했다. * 웃음이 굉장히 매력적인 남자이다. 그가 한번 미소 지으면 아무리 화난 사람이라도 그 미소를 보고 화를 풀 수 있을 정도. 미소를 지을 때 들어가는 [[보조개]]도 포인트. 여기에 잘생긴 외모와 동안도 한몫 한다. 실제로 토마스의 선수 시절과 은퇴 후의 사진을 보면 별 차이가 없다. 거기다가 현재 50세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주름살이 거의 없다. * 젊은 [[아이제아 토마스(1989)|아이제아 토마스]]와도 친분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문자를 통해 격려의 말을 전한 적이 있다는 듯. 실제로 한 TV쇼를 통해 직접 만남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젊은 아이제아 토마스가 이름 때문에 팬들에게 부자관계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고 말하자 자신이 직접 친아버지라는 루머를 퍼트린다고 답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녹화는 계속되었는데 영상을 찾아보면 둘이 훈훈한 선후배 사이인 것을 알 수 있다. * 선수 시절 NBA에서도 손꼽히는 싸움꾼인 릭 마혼(208cm)에게 겁도 없이 대놓고 안면 죽빵을 날린 걸로도 회자되고 있다. 웬일로 마혼이 그때 대응을 안하고 참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토마스의 사지가 뜯겨 나갔을지도...어쨌든 당시 업계에서 알아주는 주먹꾼 릭 마혼에게 겁도 없이 주먹을 날린 토마스도 대단하긴 했다. 사실 이 표현은 마혼과 토마스의 관계를 잘 몰라서 한 소리다. 그 직전까지 토마스와 마혼은 팀 동료로 끈끈한 동료애를 과시했었다. 마혼은 토마스의 승리를 위한 열정과 팀을 위한 희생에 크게 공감하여, 그를 팀의 보스로 인정하고 토마스의 리드를 충실하게 이행했으며, 스스로 행동대장 및 악당 역할을 자청했던 사이이다. 게다가 위에서 표현한 장면은 마혼이 트레이드 된 후, 배드 보이즈를 상대로 처음 만나게 된 경기였다. 위에 보충 설명에 자세하게 부연했는데, 여전히 디트로이트 선수들을 존중했던 마혼과 달리, 배드 보이즈는 토마스와 레임비어, 마혼의 전 꼬붕 로드맨까지 원수처럼 덤벼드는 바람에 마침내 대 난투극이 일어나게 되었다.[* 정확한 과정을 설명하면 마혼은 신생팀 미네소타의 확장팀 드래프트로 원치 않게 피스톤즈를 떠났고, 이후 필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 경기는 트래이드 이후 첫 경기였다. 마혼과 피스톤즈 선수들은 사이가 원만했으나 초반부터 디트로이트는 마혼을 거칠게 대했고, 이 과정에서 리더인 토마스가 마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퇴장당했다. 마혼은 이것까진 참았으나, 이후 속공에서 레이업하는 마혼을 로드맨이 거칠게 파울하고, 분노해 로드맨에게 소리를 지르는 마혼의 얼굴에다 레임비어가 모욕적으로 공을 들이밀자 마침내 폭발해 레임비어에게 달려든다. 그런데 갑자기 갑툭튀한 바클리가 레임비어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레임비어vs바클리가 된 것이다.] * 훗날 매직존슨과의 인터뷰에서 존슨이 91년에 디트가 시카고에게 맥없이 스윕을 당한점에 대해 무척 의아해하자 토마스는 "백투백우승을 차지하고 난 뒤 3peat의 큰 욕심이 있었다. 3peat은 매직도 버드도 못해본 거라 기합이 단단히 들었고 무리하게 슛연습을 시도하다 손목이 이상하다 싶어 병원가보니 의사가 절대 공 던지지 말라고 할만큼 본인 커리어의 처음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게 크다"고 답변했다. 사실 88년 파이널에서는 오심논란이 나온 6차전에 1점차 분패로 결국 7차전끝에 준우승(총 득실차는 디트가 우세)을 한 점도 있어 여러모로 토마스는 3peat할 팔자는 아니었던 모양. 본인이 매직의 3peat을 저지하고 3년 연속으로 물먹였던 조던에게 3peat이 저지당하고 그 조던이 3peat을 달성한 것도 재밌는 사실.[* 이때 NBA는 연속 우승을 저지한 팀이 연속 우승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레이커스 백투백, 피스톤즈 백투백, 불스 백투백투백.] * 르브론 제임스를 높게 평가하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마이클 조던과의 비교에서 르브론을 세간의 인식보다 높여주기에 혹자는 토마스와 조던의 관계때문에 토마스가 어그로를 끄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토마스는 그런거 없고 나와 조던의 사이가 좋지 않은건 사실이지만 그는 내 아들에게만큼은 상냥하게 대해주었고 나는 거기에 대해 감사한다. 그에게 악감정은 없다고 하며, 르브론과 조던 둘이 같이 드래프트에 나온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르브론을 선택하며 말하길 그가 명전급 감독[* 래리 브라운이나 라일리, 포포비치같은 감독들..조던 역시 딘 스미스, 필 잭슨같은 레전드 감독들과 함께 했다.]을 만나거나 대학을 나왔다면 지금의 커리어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찍었을 거라고 말한바 있다. * [[샴페인]] 사업을 하고 있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샹파뉴]]에서 포도 농장을 가진 사람중에 [[미국 흑인]]은 자기밖에 없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k6ktA-CymXM|#]] [각주] [[분류:미국의 농구 선수]][[분류:미국의 농구 감독]][[분류:시카고 출신 인물]][[분류:1961년 출생]][[분류:1981년 데뷔]][[분류:1994년 은퇴]][[분류:NBA 영구결번 선수]][[분류:포인트 가드]][[분류: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은퇴, 이적]][[분류:원클럽맨/농구]][[분류:인디애나 페이서스/역대 감독]][[분류:뉴욕 닉스/역대 감독]][[분류: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